벌크선 생활 중 가장 힘든 작업을 꼽으라면 선창 청소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석탄을 싣고 항해한 뒤 다음 항구에서 곡물을 실어야 하는 상황이 됐을 때 선창 청소 강도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처음 경험했습니다. 그냥 쓸고 닦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벌크선 선창 청소가 왜 까다로운지,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는지 직접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해드리겠습니다.
화물이 바뀔 때 청소 기준이 달라진다
선창 청소 강도는 이전 화물과 다음 화물이 무엇이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같은 종류의 화물을 연속으로 싣는 경우라면 잔여물만 제거하는 수준으로 끝납니다. 문제는 화물이 바뀔 때입니다.
석탄에서 곡물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표적으로 까다로운 케이스입니다. 석탄 분진은 선창 구석구석에 침투합니다. 육안으로 보기엔 깨끗해 보여도 검사관이 흰 천으로 선창 벽면을 닦으면 까맣게 묻어 나옵니다. 곡물은 식품이기 때문에 석탄 잔여물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선적 허가가 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곡물 다음에 석탄을 싣는 건 기준이 훨씬 낮습니다. 어떤 화물이 다음에 오느냐가 청소 기준을 결정합니다.
선창 청소 과정
청소는 단계적으로 진행됩니다. 하역이 끝나고 나면 먼저 큰 잔여물을 제거합니다. 그래브 버킷으로 퍼내지 못한 화물 잔여물이 선창 바닥과 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삽과 빗자루로 긁어모아 버킷으로 올려 처리합니다. 이 작업만으로도 몇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 단계는 물청소입니다. 호스로 선창 전체에 물을 뿌리고 갑판 펌프로 배수합니다. 물청소 후에 다시 잔여물을 쓸어내는 작업이 반복됩니다. 곡물을 실을 예정이라면 세제 청소까지 들어갑니다. 세제를 뿌리고 솔과 스퀴지로 벽면과 바닥을 닦은 뒤 맑은 물로 헹굽니다. 마지막으로 선창 전체를 건조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습기가 남아 있으면 곡물이 수분을 흡수해 품질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창 안에서 작업하는 것이 왜 힘든가
선창은 밀폐된 공간입니다. 깊이가 10미터 이상 되는 공간 안에서 청소를 해야 합니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환기가 잘 되지 않아 화물 잔여물에서 나오는 냄새와 분진이 고스란히 폐로 들어옵니다. 방진 마스크는 기본이고 석탄이나 시멘트 잔여물이 있는 경우엔 더 강력한 호흡 보호 장비가 필요합니다.
여름 항해 후 선창 청소는 더 고됩니다. 햇볕에 달궈진 선창 내부 온도가 상당히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작업해야 합니다. 산소 농도도 확인해야 합니다. 일부 화물은 산소를 소비하는 성질이 있어 하역 직후 선창 안 산소 농도가 낮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산소 측정 없이 들어갔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밀폐 공간 진입 전 가스 측정은 선창 청소에서 빠질 수 없는 절차입니다.
검사관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청소가 끝났다고 선적이 바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곡물처럼 위생 기준이 엄격한 화물은 검사관이 선창을 직접 들어와 점검합니다. 검사관이 손전등을 들고 구석구석 확인하는데 이전 화물 잔여물이 발견되거나 습기가 남아 있으면 불합격 판정이 납니다.
불합격이 나면 재청소 후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 사이 선박은 항구에서 대기해야 하고 항구 정박 비용이 계속 발생합니다. 한 번 불합격이 나면 선장 입장에서는 상당한 압박이 됩니다. 검사 전날 선창 청소를 마치고 모두가 긴장한 채로 검사관을 기다리던 분위기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선창 청소 부위별 난이도
| 부위 | 난이도 | 주요 이유 |
| 선창 바닥 | 보통 | 접근은 쉽지만 면적이 넓음 |
| 선창 벽면 | 높음 | 분진이 달라붙어 솔질 필요 |
| 호퍼 구석 | 매우 높음 | 좁고 잔여물 집중 |
| 해치 코aming 주변 | 높음 | 틈새 분진 제거 어려움 |
| 빌지 웰 | 매우 높음 | 오염물 침전, 냄새 심함 |
청소가 빨리 끝나야 하는 이유
선창 청소는 시간과 싸우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항구 체류 시간이 길어질수록 항구 사용료와 하역 대기 비용이 늘어납니다. 다음 선적 일정이 잡혀 있는 경우엔 청소 완료 기한이 정해져 있어 선원들이 교대로 작업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야간에도 조명을 켜고 청소를 이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빠르게 하려다 꼼꼼하게 못 하면 검사에서 불합격이 나고 결국 시간이 더 걸립니다. 빠르게 하면서도 기준을 맞추는 것이 선창 청소의 핵심입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어디를 집중적으로 닦아야 하는지 감이 생긴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마무리
벌크선 선창 청소는 단순한 청소가 아닙니다. 다음 화물의 종류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고 검사관의 합격 판정을 받아야 선적이 시작됩니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안전 확인부터 시간 압박까지 여러 조건이 겹치는 작업입니다. 선창 청소를 처음 경험하고 나서 벌크선 운항이 화물을 싣고 내리는 것만큼이나 그 사이 준비 과정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필요로 하는지 실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