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덴만 항로를 처음 통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긴장됐습니다. 뉴스에서만 보던 해적 피해가 실제로 우리가 지나가는 항로에서 일어난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선교에 올라가 망을 보면서 멀리 작은 보트가 보일 때마다 괜히 주시하게 됐습니다. 훈련은 받았지만 실제 상황이 오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가장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벌크선에서 해적에 어떻게 대비하는지 직접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해드리겠습니다.
해적 위험 해역이 어디인가
해적 위협이 높은 해역은 특정 지역에 집중됩니다. 아덴만과 소말리아 인근 해역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이 해역에서 선박 납치 사건이 집중적으로 발생했습니다. 현재는 국제 해군의 순찰 강화와 선박 자체 보안 강화로 사건이 줄었지만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서아프리카 기니만도 최근 들어 해적 활동이 증가한 해역입니다. 나이지리아 인근 해역에서 선원 납치 사건이 꾸준히 보고됩니다. 동남아시아 일부 해역도 소규모 해적 활동이 있습니다. IMB라는 국제 해사국에서 해적 사건을 집계하고 위험 해역 정보를 정기적으로 발표합니다. 항해 계획 수립 시 이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해적 위험 해역 통과 전 준비
위험 해역 진입 전에 선내 준비가 시작됩니다.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외부 접근 통제입니다. 갑판에서 선체 측면으로 이어지는 사다리와 접근 경로를 차단합니다. 파이프와 로프로 갑판 난간을 따라 장벽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외부에서 배에 오르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소방 호스도 준비합니다. 해적이 접근할 때 고압 물줄기로 선체 측면을 쏘아 접근을 막는 방법입니다. 선체에 붙어 올라오려는 사람을 물줄기로 막는 것이 실제로 효과적인 방어 수단 중 하나입니다. 야간 조명도 점검합니다. 야간에 접근하는 보트를 조기에 발견하려면 갑판 조명이 제대로 작동해야 합니다.
선교 창문에 유리 보호막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총격에 대비한 방어 조치입니다. 처음 이 준비를 할 때 이게 실제로 필요한 상황이 오면 어떡하나 싶어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선내 훈련 방식
해적 대응 훈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선교와 기관실에서 선박을 계속 운항하면서 대응하는 훈련이고, 다른 하나는 선원들이 한 곳에 집결하는 훈련입니다.
집결 훈련을 시타델 훈련이라고 합니다. 시타델은 선박 안에 마련된 방어 구역으로 해적이 승선했을 때 선원들이 대피하는 장소입니다. 두꺼운 철문으로 된 방이나 기관실 특정 구역이 시타델로 지정됩니다. 내부에는 식량과 물, 통신 장비, 의약품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훈련에서는 경보가 울리면 각자 지정된 역할에 따라 움직입니다. 항해사와 기관사는 선교와 기관실 운항을 유지하고 나머지 선원들은 시타델로 이동합니다. 통신 담당자는 외부에 위기 상황을 알립니다. 실제 훈련을 해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통신이 제대로 되는지 확인하게 됩니다.
무장 경비원이 승선하는 경우
아덴만처럼 위험도가 높은 해역을 통과할 때는 무장 경비원을 승선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선사가 민간 해상 보안 업체와 계약해 경비원들이 탑승합니다. 보통 3명에서 4명이 승선하고 무기를 휴대합니다.
처음 무장 경비원들과 같은 배에 타게 됐을 때 어색했습니다. 식사도 같이 하고 복도에서 마주치는데 총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게 처음엔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서 그냥 함께 항해하는 동료처럼 느껴졌습니다. 경비원들이 갑판에 나와 망을 보고 있을 때 선원들 입장에서 심리적으로 안심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무장 경비원 승선은 비용이 적지 않습니다. 선사 입장에서 부담이 되지만 납치 피해와 비교하면 감수할 수밖에 없는 비용입니다.
해적 대응 체계 요약
대응 단계 주요 조치 담당
| 진입 전 준비 | 사다리 차단, 소방 호스 준비, 조명 점검 | 갑판부 전체 |
| 위협 감지 | 당직자 보고, 경보 발령 | 당직 항해사 |
| 경보 발령 후 | 시타델 이동, 통신 발신 | 전 선원 |
| 운항 유지 | 선교, 기관실 계속 운용 | 항해사, 기관사 |
| 외부 지원 요청 | 해군, 해상 안전 기관 연락 | 선장, 통신 담당 |
실제로 마주친 적이 있었나
아덴만을 통과할 때 한 번 긴장된 상황이 있었습니다. 레이더에 작은 선박이 빠르게 접근하는 것이 확인됐고 선교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졌습니다. 경보까지 발령될 뻔했는데 접근하던 보트가 방향을 바꾸면서 상황이 종료됐습니다. 어선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 순간만큼은 훈련에서 배운 것들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돌아갔습니다. 실제로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지만 그 짧은 시간이 해적 대응 훈련이 왜 필요한지 몸으로 이해하게 해줬습니다.
마무리
벌크선 해적 대응은 훈련, 장비 준비, 통신 체계를 갖추는 다층적인 방어입니다. 무기 하나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접근 차단, 조기 감지, 대피, 외부 지원 요청이 순서대로 작동해야 합니다. 실제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훈련이 형식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막상 긴장되는 상황이 찾아오면 반복된 훈련이 몸을 먼저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됐습니다.